신나는 미식 세상

[요리 과학] 드라이에이징과 웻에이징의 원리 본문

요리 해설하는 남자가 알려주는 유용한 요리 기술

[요리 과학] 드라이에이징과 웻에이징의 원리

요리 해설하는 남자 2017. 12. 24. 09:32



안녕하세요. 요리 해설하는 남자입니다. 작년 이맘 때쯤 가난한 유학생이라는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시드니의 최고급 스테이크집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어봐야 만들 수도 있게 된다."는 요리사 지인의 말이 참 설득력 있게 들렸거든요. 고급 레스토랑의 한켠에 앉아 주문를 기다리는 시간은 저에게만 불편한 걸까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빨리 주문을 끝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서버가 다가와 던진 "드라이 에이징한 소고기 괜찮냐?"는 질문을 듣고 전 완전히 패닉에 빠져버렸죠. 그 때 저는 드라이에이징이 무엇인지 몰랐었거든요. 하지만 최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 창피해 그만 정체도 모르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주문해버렸습니다. 퀴퀴한 치즈 같은 풍미가 묻어있는 스테이크는 매우 연한 육질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조금 역했죠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식사 한끼에 일주일을 꼬박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왠지 모를 억울함에 밤을 지새며 에이징에 대한 공부를 했었죠.






단백질 분해효소의 작용




소와 같은 비교적 고등의 동물들은 그 체내에 단백질을 분해하는 것과 재복원하는 것의 서로 상반되는 역할을 하는 효소쌍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이것들은 해당 동물이 도축되어 생명을 마감한 이후에도 기능을 이어가죠. 이 중에 단백질의 분해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두 근육효소 칼페인과 카뎁신은 동물이 도축된 직후부터 생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능합니다.


 




수비드법을 설명할 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이 두 근육효소는 단백질을 분해해 고기의 질감을 부드럽게 하는데요. 이 효과는 칼페인이 40℃, 카뎁신이 50℃에서 열에 의해 변성되기전까지 온도가 증가할수록 더욱 더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변성 온도가 50℃인 카뎁신은 49~50℃ 사이에서 근육분해효소로써 가장 활발하게 기능하는 것이죠. 한편으로 이 과정 동안 무미에 가까운 밋밋한 단백질 덩어리들이 감칠맛의 원인 물질인 글루탐산으로 분해되면서 감칠맛을 내게 됩니다. 또한 체내의 에너지원인 ATP는 분해되면서 IMP로 바뀌고 IMP는 고기의 감칠맛을 증폭시키죠.





단백질 분해효소의 이용




50℃까지 온도가 올라갈수록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근육분해효소들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사실 어렵게 생각할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단순한 해답 하나가 바로 도출됩니다. 해당 온도 사이에서 고기를 보관하며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생각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데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온에서 유해 세균의 증식력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문제점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단백질분해효소의 활성온도구간을 양 끝단의 좁은 부분들로 제한시켜 버립니다. 일반적인 냉장 온도인 0~4℃ 구간과 저온의 가열조리구간인 50℃ 근처, 이 두 부분들로 말입니다.







실제로 0~4℃ 구간을 이용하는 그룹에는 드라이에이징과 웻에이징, 50℃근처 구간을 이용하는 그룹에는 수비드와 같은 급속숙성법들이 있습니다.





드라이에이징 




전통적인 소고기 숙성방법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드라이에이징입니다. 방법은 공기가 잘 통하는 드라이 에이징 전용의 숙성 창고를 마련하고 냉장실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 채 소고기 덩어리를 4~6주 정도 걸어서 보관하는 것이죠. 드라이 에이징은 앞에서 언급한 근육분해효소들의 긍정적인 효과들을 고스란히 가질 뿐 아니라 근섬유로부터 수분이 빠져나갈 때 축적되는 풍미를 소고기에 추가합니. 또한 드라이 에이징 시에 소고기의 겉면에 증식하는 곰팡이 류인 가지곰팡이는 특별한 효소를 만들어내 고유의 냄새와 맛, 그리고 부드러운 질감을 소고기에 입히죠. 하지만 과도하게 말라버리거나 산패되거나 곰팡이균류가 증식한 겉 부분을 잘라낸 후에야 조리가 가능하므로 이 과정에서 날아가는 수분의 무게를 포함해서 최초 고기 무게의 30%이상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 이러한 비 경제성이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비싼 이유이죠.





 

웻에이징




웻 에이징은 비교적 근래에 고안된 숙성방법입니. 진공 비닐 포장 기술과 냉장고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웻 에이징은 드라이 에이징보다 굉장히 간단하며 무엇보다도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골인 정육점에 가서 원하는 스테이크 부위의 진공 포장을 부탁하고 집으로 가져온 뒤 여분의 냉장고에 넣어 3~4주 정도의 시간을 경과시키기만 하면 되거든요. 단백질 분해효소들의 역할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 핵심이며 드라이에이징처럼 독특한 풍미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진공포장을 통해 부패나 공기와의 접촉 등에 의한 육질 손상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데 공기가 없어도 증식할 수 있는 세균인 혐기성세균에는 취약하죠





급속 숙성법



지금까지 주로 냉장온도에서 이루어지는 비교적 느린 속도의 소고기 숙성 법에 대해 알아보았죠. 이제는 50℃ 근처에서 조리하면서 동시에 숙성을 시도하는 이른바 급속숙성법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고기의 최종 숙성도> = <숙성 시간> × <근육분해효소의 활성도> 라고 도식화 했을 때 앞의 두 방법은 <숙성 시간>을 길게 해 유의미한 결과 값을 얻는 방식이죠. 그와 반대로 급속숙성법은 <근육분해효소의 활성도>를 높여 최종 결과 값을 크게 합니다.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하죠. 고기를 가열할 때 열원의 온도를 50℃ 근처로 유지해 근육분해효소인 칼페인과 카뎁신이 최대로 활성화되도록 하고 원하는 시간 동안 조리하면 되는 것입니. 물론 유해 박테리아들의 제거를 위해 겉면을 센 불에 한 번 지진 후에 실행하는 것이 좋죠. 이것은 매우 부드러운 육질의 고기를 익혀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만 장시간 동안 정온으로 조리 되어야 하므로 온도조절 장치가 있는 수조 같은 특별한 조리기구가 없다면 시도하기가 힘듭니다.





급속 숙성법 실험



급속숙성법의 결과가 궁금해서 직접 실험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수비드 머신이나 보온밥솥 등이 없는 관계로 수동으로 온도계를 보며 일정한 온도로 수온을 유지한 채 소고기를 익혔습니다. 





우선 그냥 물에 소고기를 넣고 익히면 확산작용으로 육즙이 죄다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에 소금을 넣어 농도를 주었습니다. 3% 소금물입니다.






일단 끓는 물에 소고기를 넣고 10초만 익힙니다. 저온 조리법의 문제점인 세균 증식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고기를 건져내주고 실로 묶어 냄비의 바닥에 닿지않게 고정시킵니다.






50~55℃ 사이의 온도를 유지한 채  4시간을 익혔습니다. 물의 온도가 55℃라고 해서 고기 내부의 온도도 바로 55℃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천천히 수온을 따라 올라올 겁니다. 따라서 칼페인이 40℃, 카뎁신이 50℃에서 변성된다해도 수온은 50~55℃에 맞춥니다.







4시간 후에 촬영한 겁니다. 온도계가 꽂혀있고 내부온도가 52℃죠? 

미디엄레어등급인데 마치 생고기처럼 말랑말랑합니다. 솔직히 생고기도 저렇진 않습니다. 근육분해효소의 활약덕분이죠.






겉면을 고온에서 잠깐 익혀 시어링해줍시다.






속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핑크빛으로 익은겁니다. 생고기가 아니라 

그런데 생고기보다 더 말랑말랑하고 연합니다. 급속숙성법의 위력인거죠.  







급속숙성으로 익힌 소고기를 먹어본 소감은 너무 과하게 부드러워졌다네요. 고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랑말랑하네요. 4시간이 아니라 2시간 정도만 해준다면 먹기에도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쨓든 중요한 건 두 근육효소 칼페인과 카뎁신의 효과가 최적온도에서 어느정도나 되는지를 알았다는 점이겠죠. 그럼 저 요리 해설하는 남자는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재밌는 정보로 찾아오겠습니다.  






          

Comments